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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다.
나는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.
이게 단순히 불안한 마음이 남들보다 자주 있구나,
정신력이 약해서 그렇구나,
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구나,
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.
아니 절대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.
2015년도에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서 정형돈 씨가 불안장애를 심하게 겪어 치료를 위해 하차 선언을 한 적이 있다.
그 후로 불안장애에 대한 관심이 모든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었다.
나 또한 불안장애가 무엇일까 궁금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렸다.
아쉽게도 졸업을 하는 순간 내 계정은 학교 도서관에서 즉시 삭제가 되어서 대여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.
아쉽게도 내 인생을 180도 바꿔준 그 고마운 책은 찾을 수 가 없어졌다.
(대학교... 너무 한 거 아닌가요. 소중한 추억들이 많은데 졸업했다고 모든 시스템에서 강퇴라니요...)
그 책은 엄청난 의학 서적도 아니었고, 심리상담자분의 저서로 기억한다.
불안장애란 무엇인가? 와 자가진단 체크리스트가 있었고,
여러 가지 치료 방법과 나와 같이 잘 모르는 일반인을 위한 메디컬 가이드라인이었다.
아무 생각 없이 책을 정독하면서 페이지마다 적혀있던 증상과 원인이 나와 200% 일치하는 걸 보면서
소름이 끼쳤다.
드디어 내 평생 찾아다녔던 답이 여기 있는 걸까?
내가 살면서 항상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과 감정을 받았지만,
이게 도대체 왜일까?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?라고 넘어갔지만
이 책에 있는 자가진단이라면 나는 당장 병원을 가야 했다.
책에서는 거의 부탁을 했다.
"많이 심각한 상태이십니다.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가보시길 바라요. 많은 도움받으실 거예요."
많이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...
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거처럼 평생 육체가 정신을 못 따라왔다.
그러니 당연히 내 몸이 아프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온갖 의학과에는 진료를 받아봤다.
갑상선 검사, 혈액검사, 물리치료, 정형의과, 한의원 등.
수치는 항상 정상이었고, 의미 없이 날아가는 의료비에 속상했다.
하지만 또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희망을 쫓았다.
어딘가는 나를 고쳐줄 수 있겠지라는 단순한 wishful thinking.
하지만 어딜 가도 "크게 문제없으세요. 수치도 정상이고, 꾸준히 운동 열심히 하시는 걸 추천드려요."
강남 도곡동 어디에 있는 정형의과 의사에 망언은 아직도 기억한다.
"그렇게 아픈데 왜 몇십 년을 참고 이제 와서 저한테 그러세요?"
그러게요. 저는 왜 평생 참고만 살았을까요? 선생님 말씀이 맞네요.
...
그래. 내 잘못이지. 나는 참고만 살았지.
왜냐면 그게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었던 거니.
가난이란 참 무섭다.
사람의 가치관, 자존심, 꿈, 목표, 인생관. 모든 것을 무너트린다.
벗어 날 수 없다.
...
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쉽게 결정을 못했다.
정신의학과를 내 발로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한다니...
일단 해결책은 나왔으니 행동에만 옮기면 된다.
하지만 나는 그날 밤 혼자 방에서 펑펑 울었다.
정말 억울했다.
이렇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까.
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하면서 정말 모두가 미웠다.
사망학에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5단계 DABDA라는 모델이 있다.
한 사람이 본인의 죽음 혹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겪는 감정 프로세스라고 한다.
1단계 | 부정(Denial) |
2단계 | 분노(Anger) |
3단계 | 타협(Bargaining) |
4단계 | 우울증(Depression) |
5단계 | 수용(Acceptance) |
내가 죽음을 앞둔 상태는 아니었지만 내 감정 메커니즘은 동일하였다.
...
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병원을 찾아보았다.
그런데, 평생 안 가봤던 정신건강의학과는 어떻게 찾아보고 가는 거지?
(정신과라는 단어가 주는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들었다)
폰에서 네이버 지도로 검색을 하다가 집 근처에 한 군데를 발견했다.
서울 여러 군데 지점도 있고 하니 나름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여 바로 전화를 해봤다.
"네 ooo입니다"
...
조금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답을 했다
"네 안녕하세요 진료 예약 좀 하려고요"
"네 처음이신가요?"
"네네. 처음이에요..."
"어디가 아프신가요?"
...
정말 어려운 질문이었다. 내가 그걸 알았으면 이렇게 안 살았지라면서.
글쎄... 나는 어디가 아픈 것이 이 병원에 왜 전화를 한 거지?
아니에요 라고 끊으려다가 다짐을 했다.
한번 믿어보자고.
"아 불안장애가 있는 거 같아서요, 진단 좀 받아보고 싶어서요."
"네네 성함이랑 진료 희망하시는 시간과 날짜를 알려주세요"
나는 매우 심각하고 초조하면서 전화를 걸었지만,
받으신 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감정 없이 받으셨다.
2016년 2월,
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첫 방문했다.
연세필정신과의원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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